'삶에대한관찰'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1/24 활자 중독증 (2)
  2. 2008/01/16 Newspaper test (2)
  3. 2008/01/02 아름다운 거리 (2)
  4. 2007/12/19 갑자기..
  5. 2007/12/19 내 아들에게 한마디.
  6. 2007/12/12 선물은 주는순간 선물이 아니다. (1)
  7. 2007/11/20 광학식 비중계 - 남에게 비춰 보기
  8. 2007/11/07 사과 반쪽
  9. 2007/10/22 사이버 세상 中 블로그
  10. 2007/10/14 팔배개
  11. 2007/09/22 판타지 문학에 대한 나름의 생각
  12. 2007/09/15 carpe diem/carpe noctem/mementomori
2008/01/24 14:20

활자 중독증

  약물중독, 마약중독, 중금속 중독, 컴퓨터 중독, 성형중독 등 다양한 중독이 있다. 그런데 병실에 있는 동안에 새로운 중독에 대해 듣게 되었으니.... 바로 활자 중독증.

  화장실이 책 읽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에 토를 다는 이는 많이 않을 것이다. 본인 또한 즐겨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소변'을 볼 때라면? 그떄 책은 불편할 따름이다. 허나, 소변볼때마저 책을 들고온 환자가 있기에 물어봤다.

"책 재미있어요?" "아니요"
"뭐 보는데요?" "(책 표지를 보여줬다.)"
"무협이네, 그런데 -재미없는걸- 왜 -불편하게 여기까지 가져와서- 봐요?" "활자 중독이에요"
"아....." "한 3일 넘게 책을 안보면 불안해요"

  덕분에 나도 중독증이 있나 없나 체크해 보게 되었다. 고 3이후 책을 3일 넘게 보지 않은 적이 없다. 대학 다닌때는 매일 수업듣고 주말에는 보고싶은 책 보고 훈련소와서도 역시 군대와서도 역시 책을 봤다.(군대가 사회보다 시험이 많다. 그리고 압박도 강하다.) 그리고 요즘도 계속, 뭐 확실하진 않지만 책이 없으면 뭔가 읽을거리를 찾으니 나 역시 중독증세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따져보면 요즘, 활자중독 아닌 사람 찾기 힘들겠다.

  그리고 이 내용과 관련 없지만 이왕이면 지나가는 가랑잎에도 웃는 웃음 중독이 만연해지면 좋겠다. 여기 환자들 다들 뾰루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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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6 09:26

Newspaper test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할 일이 신문에 실린다고 가정했을떄, 그 일이 부끄럽다면 실행하지 말라-

  '신뢰'와 '투명성'에 관한 강의를 들을때 배운 내용이다. 그떄 강사님께서 'Newspaper test'를 알려 주셨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신문에 기사화 되어 모두가 보았을때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실제로 내가 자주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뭔가 꺼려진다면 한번쯤 실행하기에 딱 좋은 방법이다. A라는 일을하기 전에 일의 옮호 그름을 내가 익혀온 도덕성에 기반해 판단할 수 있고 부정적인 경우에는 옳은 길로 변경 할 수 있고, 옳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좀더 좋은 처리, 떳떳함을 갖고 진행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 한가지는 '객관적 시각'이지 '주관적 시각'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객관적 시각에 묶여 살 필요는 없지만, 도덕성을 판별할 때는 나자신을 잠시 객관적으로 냉쳘하게 비교함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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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2 17:10

아름다운 거리

예전에 한 분께 '아름다운 거리'에 대한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아름다운 거리'는 우리가 보통 지나다니는 보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런 거리이다.
이쯤 하면 누구나 아하, 뻔한 그 거리?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뻔한 거리를 너무도 무시한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서로가 지켜가는데 있어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그 거리는 알고 지낼수록 짧아지게 된다. 하지만, 그 거리가 '0'이 되기는 너무도 힘들다. 자기 자신에게도 숨기는 우리의 삶에서 남에게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럼 꿈속에서나, 혹은 문뜩 든 생각을 애써 무시하는 당신의 행동을 생각해 보아라.) 그런데 우리는 그 거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0'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쉽게 상대가 상처받을 말을 해버린다. 나 역시 그런 실수를 했고, 최근에 그런경험이 있어 이러헥 말한다. 100이넘는 거리를 두고 0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투른 결론을 내버렸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참담하다.

  알고있으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그 거리.
  살면서 잊지 말고, 조심스럽게 지키자.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모두들 숨기고 싶은것이 있고, 보이고 싶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듣고 싶지 않는 것도.

  아름다운 거리는 지켜나갈때 아름다운것이다. 그렇다고, 애써 거리를 키울 필요는 없다. 가까워짐이 있기에 그 거리가 아름다운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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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9 20:19

갑자기..

갑자기 오늘!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잠시 키던 바이올린, 그때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좋을 것을 몰랐다. 그저 송진 지긋이 먹은 현이 뻑뻑함을 비관하며, 울듯 말듯한 소리를 토해낸다고 생각했지, 그 소리가 아름답다, 혹은 정겹다, 라고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시 지나가는 바이올린 소리가 마음에 착! 하고 앵겼다. 좋은 소리, 현을 이용한 악기중에서 거문고와 가야금, 하프를 제외하고 특히 좋다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없는 내가, 오늘 따라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전역 후, 혼자서 한번 노력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으니, 전역후에 못해도 한달은 노력하겠군. 다 잊어버린 코드(바이올린도 코드라고 하나?)도 잡아보고 내 멋대로 음도 조절해서 켜 봐야 겠다. 10년가까이 집에서 썩어가고 있는 바이올린이 온전할까? 라는 의문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아버지의 20년 넘은 기타도 내가 어릴때 띵가띵가 하면서 놀았는데, 바이올린이라고 망가질소냐!
  8개월? 정도 있으면 이제 이곳도 안녕이다.
좀더 따뜻한 미래를 향해서~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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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9 20:17

내 아들에게 한마디.

내 아들에게 한마디.

어제, 그러니까.. 26~27일 동안 내가 내 아들에게 한 말이 있다.

너무도 화가 나서 한 말일 수도 있고, 내가 내 삶의 원동력을 찾은 질문이기도 해서 해봤다.

"넌 왜 사니?"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큰 충격적인 말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해서 어릴적부터 많은 고민을 했었다.
요즘에야 그 질문을 거의 하지 않지만 말이다. '왜 사냐', 왜 그렇게 사냐가 아니라 '왜 사냐' 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면,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역시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내 아들놈도 "죽지 못해 산다."라고 대답했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 따위는, 그래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그 말은 마지못해 태어나서 산다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곧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고, 아쉬울 것 없다는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난 또 화를 뿜었다. "왜! 왜! 왜!이 아름답고 찬란한 인생을 無意味하게 살아가려는 것냐!" 라고. 그래서 다음날 다시 물어볼 테니 생각하면서 자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내게 날아온 화살 역시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내 아들에게 강제적으로 쏘았다. "날 뛰어넘어라, 날 이겨라, 적어도 2년동안 날 이기지 못하면, 니가 꿈꾼다는 '이사'따윈 근처에도 못가고 인턴조차 얻기 힘들것이다."나며 말이다. 답답한 나의 발악이었을까? 그렇게 말했다. 적어도 이 방법이 듣는이로하여끔 큰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뒤로도 잠시동안 나의 충격요법은 계속되었지만, 그래 그래도 효과는 보았다. 하지만, 내가 쏘아버린 말에 대한 대가 치고는 너무도 작은것 같다.

더이상 상처주는 말을 쏘지 말자. 편안하게 말해도 힘든 말들을 나에게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쏘아버리지 말자.

그리고 내가 쏘아버린 말들에 맞아버려,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하지만.
난, 널 미워해서 근게 아니란걸.. 그렇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게 욕심이란것을 알면서도 바라게 되는구나. 아쉽게도 난 아직 조건없는 사랑을 주지 못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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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2 20:06

선물은 주는순간 선물이 아니다.

'*경'이가 예전에 한 강의를 듣고 와서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라 이렇게 적어본다.

  군대에 있다보면 외박 혹은 휴가 따위의 출타를 갔다오면 으레 사람들은 서로를 위한 선물(동계에는 장갑, 비니 등이고 거의 필수적으로 담배가 있다.)을 사오거나 사오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으례 그런양, 사오고 또 사다준다. 그러다보면 이런말이 오고갈때가 있다.

"야, 지난번에 내가 갔다오면서 니 선물 사왔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절실하게 생각난다. 선물은 주는순간 선물이 아니다. 참 슬픈 현실이다. 왜 우리는 선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을(品) 주면서 서로에게 다시끔 그걸 핑계로 요구하게 되는 것일까? 이건 비단 전우(戰友)들 사이에서 뿐이 아니라 연인(戀人)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필자의 겨우는 선물이고, 기념일이고 별로 잘 챙겨주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거의 신경쓰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지난 기념일때(혹은 생일때) A를 사줬는데 내 기념일(혹은 생일)때는 겨우 B를 사주더라'따위의 말을 듣다보면, 저들은 사랑하기에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선물을 주고받기 위해 물질적인 필요에 의해 교제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필자 또한 교제를 할때 선물을 주고 다음 기념일때 꽤나 기대한 적이 있었다. 참 생각해보면 바보스럽기 그지없다. 선물을 줄때는 그저 웃는모습 한번 보는것조차 즐거웠는데, 왜 나중에 가면 그게 뭐 그리대단하다고 다음에 내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게 되는가?  
  처음 줄때는 그저 받은면 좋아하겠지라는 막연함에 선물을 건네주고서 다음을 기대할까? 금전적인 것이어서 그런걸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금전에 대한 개념이 없이 모든걸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 선물을 줄때 가장 처음하는 생각은 '필요할까?' 이고 다음은 '있을까?', '좋아할까?', '싫어하려나?', '다른사람이 더 좋은걸 주면어떻게하지?' 등일거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서로 모든걸 소유한 상태에서는 어떤 설물을 줘도 시큰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 진실로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 만들어지려나? 적어도 금전에 얽매여 퇴색되어버리는 선물보다는 좋을 듯 싶다.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정성을 들여 만든것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떻까? 조그마한 것이라도, 비록 실속이 있지는 않아도, 선물을 주는 의미와 선물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것은 조그만 것이라도 진정한 선물의 의미와 함께 소중한 마음까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덧,
  내부순환도로를 뛰다가 문뜩 생각이 나버렸다. 오늘도 한번 지줄거렸는데 얼마나 이상한지, 쩝. 선물 참 오묘하다.
*덧,
  선물[膳物]
    [명사]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 ≒물선(物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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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0 20:10

광학식 비중계 - 남에게 비춰 보기

나의 농도는 어느 정도일까?

  훈련대비 정비를 하다가 냉각수 비중을 맞추기 위해 비중계를 들었다.
광학식 비중계로 비중을 제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비중을 제고자 하는 액체를 살짝 찍어서 비중계에 잘 펴 바르고 빛에 비춰보기만 하면, 파란 빛으로 선이 죽 생겨서 금세 농도를 볼 수 있다. 냉각수나 밧데리의 비중을 체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한다.
  이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비춰지는 나의 농도는 어느 정도일까? 늘, 남을 들어 비중계 위에 세우고 여러 시선으로 빛을 바꿔가며 남의 농도를 제보고, 사물을 올려놓고 나의 시각으로 또는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비춰보는 행동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나는 다른사람의 농도계 위에서는 얼마다 견딜 수 있는 사람이고, 얼마나 진한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비중계속에서 나는 어느정도의 사람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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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도 쉽게 얼지도 쉽게 타지도 너무 무겁기만 하지도 않은 그정도 비중, 아니 그런 비중보다는 쉽게 움직일 수 없게 무겁고, 때론 가벼운 바람에서 스러지고, 쉽게 불붙어 쉽사리 꺼지지 않고, 얼리기는 힘들지만 한번 얼면 아무리 녹이려 노력해도 잘 녹지 않는 것이 나인것 같다.
.
.
잠시 무겁게 누르는 숨을 고르고, 생각을 다듬어 보자. 잠깐 짬을 내어 오늘 다시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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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7 20:13

사과 반쪽

사과 반쪽 나눠 먹기

아는 분의 블로그에서 싸움을 말리면서 심한 심적 갈등을 느끼셨고, 그 결과 인간이 덜 되었다는 결론에
댓글을 달다가 문뜩 생각나서 이렇게........잡설을 합니다~

  40km 행군을 하다보면, 물도 물이지만 단것이 먹고 싶어진다. 물론 먹고나서는 후회하면서 물을 찾지만 말이다. 그럴때 갈증을 달래주면서 동시에 단것의 느낌까지 충족해 주는것이 있다. 바로 사과.(물론, 산에 갈때는 오이도 애용하지만 여긴 군대고 구하기 힘들다. 그나마 사과는 보급이 나오지만, 내가 아는 어느 부대도 오이를 통짜로 보급해 주지 않는다.)
  보급 받은 사과를 안먹고 숨겨놨다가(이렇게 말하면 치졸해 보일지 몰라도 -_-; 갔다오신 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방독면 가방에 잘~ 넣어서 행군에 동참 시켰다. 물론, 전일 보급나온 '맛스타'분들도 동행하셨다. 이번 행군떄는 다른 먹을 거리는 추진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맛스타 4캔, 물 충만한 수통, 사과 한개로 랄랄라~ 했다.(사실....추진비가 없어서.)
  지금까지는 단순한 준비사항일뿐.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행군을 시작한지 4시간 30분이 경과한 후에 슬슬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이때 생각난 것은 달콤 시큼한 사과!
방독면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들고 청결하게 씻겨준 뒤에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사과한개를 처음 베어물기가 너무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들어, 사과를 반으로 쪼갰다. 그뒤 내 코를 타고 흐르는 상큼한 사과향이란~ 비쩍 마른 입안에 침이 돌았다. 그와 동시에 한쪽을 베어물었다. 확실히 사과는 맛좋은 과일이다. 입을 타고 흐르는 그 풍부한 과즙과 사과향이란~
동시에, 후임들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을 휘집고 갔다.

후임들도 먹고 싶겠지? 이놈들 눈치 보느라 사과 챙길 생각은 하지도 못할텐데....... 아아아아아아 어떻게 할까.......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주자!
그 복잡한 생각은 들춰보면, 혼자 먹을까? 후임을 줄까? 말까? 혼자 한개 다 먹어도 만족도가 한계효용을 넘어서진 않고, 그렇다고 그 근처도 못가지, 그럼 배는 부른가? 아니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정도의 만족감을 느낄 것인가? 100%의 만족도로 생각하면 사과 하나가 주는 만족도는 반개가 주는 만족도와 비슷한 것이고 오히려 뱃속에 무언가 들어가 가득하다는 느낌에 행군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한개와 반개의 차이는 기쁨이 지속기간, 한개를 먹어도 행군 전체 길이에 비하면 별로다. 그렇다면 별 효능 없이 한개 욕심부리면서 처먹지 말고 나눠서 잠시간의 기쁨이라도 같이 즐기자 라며 -_- 나눠줬다. 후.. 하지만 역시나 주면서 아쉬운 마음은...쩝쩝쩝..
  이러나 저러나 잘 나눠 먹고 웃는 모습도 봤으니 그걸로 오케이다 -_-

뭐~ 아쉬운 마음 백만번 가져도 또 이짓 할텐데...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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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20:17

사이버 세상 中 블로그

블로그의 댓글 기능.
 
  편리한 기능인것 같다. 주인은 글을 남기고 그 글에 대한 의견을 남기며 서로간 의사소통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인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아니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댓글의 한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실존여부.뭐 IP주소나, 로그인 등의 기능이 있지
만, 그건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여러개를 소유할 수 있기때문인지, 그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것에서는 더욱 의심스럽다. 한번 내 블로그에 비밀글 한개를 해놓고, 아이디를 바꿔서 들어
와 보기도 했고, 비 로그인 상태로 댓글을 달아보기도 했다. 그때 느껴진 것은 같은 주제에 관해서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두 의견을 쓰는것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면 어떤 글(포스팅)에 관해서 불 붙이기는 쉽다고 생각된다. 나 역시 혼자
몇개 달아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지금 내 글에 답변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고, 한 사람의
답변이라고. 왠지, 실제로 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기존에 존재하던 인맥에 의해서 남겨지지 못한 글에
대한 의문점, 의심은 나만의 생각인가?

가끔이지만, 모든 블로그가 한사람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건 좀, 무리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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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4 20:19

팔배개

팔배개 - 따듯하고 푹신한 기억.//다른사람과 관계로 살펴본 팔배개.

  내 기억에 음 다들 좋다고 말하고 사전의 예문으로 실려있는 아버지의 팔베개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빠의 팔베개가 가장 편하다.(naver국어사전)

하지만 어머니의 팔배개는 몇번 경험해 본 적이 있고, 또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달은 차갑고 맑은 느낌을 준다면 반대로 팔배게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선물해 주었다. 아쉽게도 몇번 경험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팔배게는 혼자서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혹은 덕분에 할 수도 있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것 처럼 말이다.
  먼저 혼자서 하는 팔배게는 따듯함도 없고, 차가움도 없고, 그저 그럴 뿐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배개가 없을때 더없이 좋지만, 혼자만의 삶처럼 쓸쓸한 기운도 느껴지고, 오래하면, 처음의 편리함 보다는 팔의 저림에 고통스러워한다. 누군가에 의해 팔배개를 하게 될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억지스럽게 끌려가지만, 나중에서 오히려 찾게 된다. 음, 팔배개의 중독성(본인이 좋아한다;;)때문에 그런것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팔배게를 해주면 그사람은 가끔 그리고 종종 다가와 팔배개를 원한다. 그치만 이건 처음에는 둘다 좋아하지만, 어느순간에는 강요가 되고, 고통이 된다. 한쪽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시작된 관계와 같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덕분에 한 팔배개는 정말이지 더없이 좋다. 그 사람이 원한 덕분에 그리고 내가 원한 덕분에 한 팔배개는 더없이 포근하고 오래하고 있어도 팔을 내준 사람도 불편함을 모르고, 저림을 모른다. 또한, 배고 있는사람역시 불편함을 모르고 오히려 더욱 파고 든다. 따뜻한 그 품으로. 꼭 설명하지 않아도, 한번이라도 따뜻한 팔배개를 비어본 사람이라면 그 관계와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이 안난다.)하다.

  더없이 포근한 팔배개 처럼, 우리 삶도 삭막함 보다는 좀더 포근해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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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0:22

판타지 문학에 대한 나름의 생각

현대 문학에서 판타지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란 제목으로 소논문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너무나 진부할 정도로 일반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판타지 문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늘, 아쉬웠다.
그때 감정이 오늘 울컥 해서 한번 다시 본다.

혹시.. 지나가다가 보시면 부족한점, 말도안되는것들, 이상한것들, 맘에 안드는것들을 지적해주세요.

혹시.. 맘에 드신다면,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추신 : 군대라서 그런지, 업로드에 제한이 있군요.
        기타 편집 프로그램에서 불러와서 보시는것이 편할 거에요.
        텍스트로..보기는 좀 귀찮을꺼에요. fantasy.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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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5 20:26

carpe diem/carpe noctem/mementomori

* Carpediem
  많은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Carpediem은 '그 순간을 즐겨라'라는 듯이다. H카드 선전에서 처럼 아버지께서 즐겨 말하던 말과 같다. 멋지게도 힘들때나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기타등등할때, 언제나 이 말 처럼 즐길 수 있다. 고독은 씹는 맛이 있고 슬픔은 흘리는 맛이 있으며, 즐거움은 퍼뜨리는 맛이 있고, 부끄러움은 달아오르며 귀여운 맛이 있고, 흥분됨은 더우며 타는듯한 목마른 맛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즐거움의 맛이 있겠지만, 조금만 쓰련다. 글로 기록함으로써 그 맛의 줄음과 제한됨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한가지 맛에서 물들어 있다. 비오는 날 어두운 구름아래 눅눅한 맛속에 말이다. 어서 누군가 혹은 나로 인해서 따뜻한 봄날아래 씹어먹는 푸른 싹의 맛을 느끼고 싶다. 그 푸른 싹과, 하늘 빛 소스의 오묘한 맛과, 보랏빛 하늘의 별들의 시원한 맛을 말이다.

*Carpenoctem
  나와 같이 수업을 듣던 K양(나에겐 K가 더 정겹다.)에게 알게된 carpenoctem. 뱀파이어의 춤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것은 최근, 언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 싶다. K양은 뱀파이어씨와 관련된 글을 써 올린 적도 있으니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다.
  "밤을 즐겨라" 정말이지 그때 당시 나와 K양(K양은 지금도 이겠지만,)에게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뭐 밤에 둘이 어쩐건 아니고 다들 밤을 즐겼다. 흔희들 말하는 밤의 핑크빛 문화가 아닌 각자의 삶속에서 서로를 살찌우는 그런 작업 속에서 말이다. K양과 지내면서, K양만이 갖고 있는 오색 찬란한 빛을 보노라면 나또한 달의 특성을 한껏 발해 오색 찬랑하게 빛나며 즐거웠으니 말이다. 당신은 나의 태양인가? 별인가? 혹은, 관찰자 인가?

*Mementomori
  죽음을 기억해라(인지하라), 강렬하면서도 엄숙한 한마디이다. 짧은 순간의 삶을 살면서 놓치기 쉬운 후회들과 매번 생각하면서도 놓지는 말들을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죽음을 기억해라. 죽음이 없으면, 인감됨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 속에서 죽음이 차지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많다. 그리고 소중하다. 죽음, 당신이 없다면, 난 아마도 벌써 파괴 되고 말았을 것이요. 죽음 사랑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혼불을 불사를 수 있도록 해주는 당신이여 당신 덕분에 비오는 날 어두운 구름아래 눅눅한 맛 속에서도 아직 실오라기 같은 태양빛을 잡고 지금 여기 서있습니다. 죽음이여. 그 멋진 축제여.

당신은 죽음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태양인가요?
누군가의 별인가요?
아니면 관찰자 인가요?
죽음의 축제에 들어온 당신께 묻고 싶군요. 지금 그 축제는 성황입니까?
저의 축제는 아직 한창이군요. 지금은 비구름이 눅눅함을 뿌리고 있지만, 아직 태양빛 실오라기를 잡고 있으니 금새 밝아 지겠죠.
실오라기를 힘차게 당기면, 구름 속에 숨어있던 태양이 금새 다기 올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금 뒤에 저의 멋지고 매력적인 달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보면 볼 수록 빠져드는 그 빛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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