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양장본이 보랏빛 꽃과 함께 배달되어 왔을때, 아직 책을 펴진 않았지만 책 속에 담긴 내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에 서둘러 살피게 되었다. 처음 책의 소개에서 작가 '이현'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인간 본연의 선악을 다루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책 소개중 가장 끌린 부분이기도한 '인간 본연의~'는 좀더 신비감을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신비감을 안고 이현 화백의 화랑에 들어가 그의 6개의 '修羅圖'를 감상하고는 출구를 나왔을 때,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우리사회의 암울함에 축축히 젖어 있었다.
이현화백의 6개의 수라도가 그려진 살벌한 화랑속으로 거울과 술 한잔 하는 기분으로 들어가 보자.
우린 보통 힘들 때, 화날 때, 기쁠 때, 축하할 때 등 술을 한잔 하자고 한다. 이 책에서 대체적으로 '술'이 혼탁한 세상에 지친 사람들의 '안정제'로 등장했지만, 결코 완전한 치료제로 되어 주지 못했다. 오히려 '술'은 의심, 문제를 유발시키고 확장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화랑에 들어서자 그의 첫번째 작품 '修羅圖'가 눈에 들어왔다. 악신 수라가 그려진 그림, 아니 우리 사회의 나신이었던것 같다.
그 적나라한 나신을 꼼꼼하게 살피면, '나'가 믿은 '위대한 우리 정부'는 사실을 숨기는데 급급해 대책을 세워주지 못했고, 믿고 있던 공장장 '권오달'은 오히려 재산을 훔쳐가는 '악귀'였다. 세상의 수라를 피해 숨어든 '절간'은 안식처인듯 했으나 '박영감'의 '술'로 인해서 온통 수라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그의 첫 작품, '修羅圖'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됨을 유지 확대 시켜주는 '신뢰'가 파괴된, 잔인한 세상사를 보고 씁씁한 미소를 갖고 다음 작품으로 발을 옮겼다.
둘째 작품은 '시선에 대하여' 부제는 '무관심'이었다. 비뚤어진 관심보다 무섭다는 '무관심'을 설명하는 맹인의 독설에 나는 몸둘바를 모르고 부끄러워졌다. 두번째 작품을 본 순간, 나의 삶에 '선의'는 죽어있었고, 분노와 어설픈 동정심만이 살아 넘실거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 충동자선 마져도 무너져 내린 '신뢰'처럼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첫째 그림과 둘째 그림속에 내가 그려진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과 함께 나머지 그림 '개와 맥주(신뢰, 타락)', '입석(권위의식)', '노조탄생(신뢰, 책임의식)', '대미(허영)'을 다 보았다. 위 작품들을 종합해 보면, 신뢰가 결여됨으로 겉치래를 더 중요시하며 발생하면 그려지는 탁한 그림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모든 그림들은 비단, 이 작품의 내용만이 끝이 아니라 계속 지속됨을 말하며 모든 작품의 끝은 마무리 되지 않은채 사회에 의해 우리에 의해 그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도덕적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과학기술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 같이 '관계'의 기초인 '신뢰'가 없다면 무수한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는 삽시간에 파괴될 것이다. 이런 사회의 안정제는 '술'이 아니라 '신뢰'와 '투명성'이다. 신뢰와 투명성은 정직함으로 서로간의 의심을 없애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인간의 관계됨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전에 수라의 세상에서 두려움없이 수라를 직시할 수 있는 '이현'작가와 같은 눈이 먼저 시급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