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바람이 내게 있어서는 삶을 사는 원동력이다. 다행인건 이 둘은 적어도 제가 숨을 붙이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영원과 같이 존재할 것들이여서 늘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바람속에는 바람이 지나온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이 담겨 있어 그 향기가 내게 느껴지는 듯 하다. 특히 달빛을 담고 흐르는 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그 청아함에 내 속이 깨끗해 지는 느낌이다. 어디서 또 느껴 볼 수 있을까. 그 청아함을 담은 시원한 바람을!
아래 '긴글'은 김동인작의 광염 소나타 인데, 어릴적에 읽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아직도 제목까지 기억하고 있는 소설이다. 미친듯한 불을 통해 최고의 곡을 작곡한 피아니스트. 조금 비뚤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런 열정이 담긴 곡보다 열정적인 곡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언제 한번, 들어봤으면 하는 그런 곡이다. 그 열정속에 잠시라도 빠져 보고 싶다면. 조금 짬을 내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1.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는 사람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可能性) 뿐은 있다 - 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찜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 모(胡某)나 기무라 모(木村某)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는 동물을 주인공 삼아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서,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기회(찬스)라 하는 것이, 사람을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것을 아시오?”
“녜, 새삼스러이 연구할 문제도 아닐걸요.”
“자, 여기 어떤 상점이 있다 합시다. 그런데 마침 주인도 없고 사환도 없고 온통 비었을 적에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던 신사가 - 그 신사는 재산도 있고 명망도 있는 점잖은 사람인데 - 그 신사가 빈 상점을 들여다보고 혹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어요?
통 비었으니깐 도적놈이라도 넉넉히 들어갈 게다. 들어가서 훔치면 모를 테다. 집을 왜 이렇게 비워둔담… 이런 생각 끝에 혹은 그 - 그 뭐랄까, 그 돌발적(突發的) 변태 심리로서 조그만 물건 하나(변변치도 않고 욕심도 안 나는)를 집어서 주머니에 넣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있습니다. 있어요.”
어떤 여름날 저녁이었었다. 도회를 떠난 교외 어떤 강변에, 두 노인이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기회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유명한 음악 비평가 K씨였었다. 듣는 사람은 사회 교화자의 모씨였었다.
“글쎄, 있을까요?”
“있어요. - 좌우간 있다 가정하고, 그러한 경우에 그 책임은 어디 있습니까?”
“동양 속담 말에, 외밭서는 신 끈도 다시 매지 말랬으니, 그 신사가 책임을 질까요?”
“그래버리면 그뿐이지만, 그 신사는 점잖은 사람으로서, 그런 절대적 기묘한 찬스만 아니더라면 그런 마음은커녕 염도 내지도 않을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찌 됩니까?”
“…”
“말하자면 죄는 '기회'에 있는데 '기회'라는 무형물은 벌을 할 수가 없으니깐, 그 신사를 가해자로 인정할 수밖에는 지금은 없지요.”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 - 사람의 천재라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기회'가 없으면 영구히 안나타나고 마는 일이 있는데, 그 '기회'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끄을어내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
“글쎄요.”
“선생은 백성수라는 사람을 아시오?”
“백성수? - 자 - 기억이 없는데요.”
“작곡가(作曲家)로서 그…”
“녜, 생각납니다. 유명한 - <광염 소나타>의 작가 말씀이지요?”
“녜,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 뭐 발광했단 말이 있었는데…”
“녜, 지금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는데, 그 사람의 일대기를 이야기할께 들으시고, 사회 교화자(社會敎化者)로서의 의견을 말씀해주십쇼.”
- 내가 이제 이야기하려는 백성수의 아버지도, 또한 천분 많은 음악가였습니다. 나와는 동창생이었는데 학생 시대부터 벌써 그의 천분은 넉넉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작곡과(作曲科)를 전공하였는데, 때때로 스스로 작곡을 하여서는 밤중에 혼자서 피아노를 두드리고 하여서, 우리들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