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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울타리/일반

[스크랩]"울어야 보상받는 소비자" vs "언 발에 오줌누는 대기업"

"울어야 보상받는 소비자" vs "언 발에 오줌누는 대기업"
2008.04.10, 차영미
 

[스포츠서울닷컴ㅣ김용덕기자] "결국 차를 바꿔 주네요."

지난해 6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 모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40일 만에 녹이 슨 '헌' 에쿠스를 '새' 에쿠스로 보상받았다는 것. 인터넷 게시판에 '불량 에쿠스-녹 슨 일지'를 써내려간 뒤 한 달도 안돼 얻어낸 '쾌거'(?)였다.

"그렇게 거만하던 현대자동차가 꼬리를 내렸어요. 태도가 180도 변했네요. 게시판에 있는 모든 글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리고 새 차로 교환해 준다고 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한국식 정서는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단 김씨 뿐 아니다.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LG전자의 문제점을 고발한 한 블로거 역시 LG 측으로 부터 "블로그 글만 삭제하면 무상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조건부 제의를 받았다.

'울어야 보상받는 소비자'와 '우는 소비자에게만 보상하는 대기업'.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밀고 땡기는 서글픈 현실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취재했다.


◆ 울어야 보상받는 소비자

지난해 1월 현대자동차 '에쿠스'를 장만한 김씨는 어이없는 차체 결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에 따르면 차를 구입한지 40여일 만에 본네트 앞부분 페인트가 벗겨졌고 그 안을 살펴보니 녹이 슬어 있었다. 이에 김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녹 슨 에쿠스 차량 사진을 게재하며 인터넷 투쟁(?)에 나섰다.

당시 기자와 만난 김씨는 "현대차에 아무리 문제점을 이야기해도 콧방귀도 안뀌었다.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태도에 열받아 인터넷에 녹이 슬어 변하는 과정을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씨는 적극적으로 7,000만원 에쿠스 차량의 도장불량을 올리기 시작했고, 기자의 취재(관련기사보기)에도 적극 협조했다.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LG전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한 블로거 역시 마찬가지다. 600만원을 주고 고급 프로젝션 TV가 1년에 한 번씩 말썽을 피운 것. 원인을 알아보니 램프가 나간 것. 문제는 이 램프라는 소모품을 1년 주기로 20여만원 주고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블로거는 "LG전자 측이 제품을 팔 때 미리 설명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1년에 한 번씩 소모품이 램프를 교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연히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LG전자는 구입에 영향을 미칠 내용을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사기판매"라고 주장했다.


◆ 우는 소비자만 달래는 대기업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다. 대기업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 법칙(?)이 적용됐다. 숱한 불만에 꿈적도 안하던 대기업이 인터넷 게시글 하나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 전화 민원에는 소홀하지만 인터넷 민원에는 꼼짝도 못하는 모습이다.

우선 녹 슨 에쿠스를 타고 다닌 김씨는 새 에쿠스로 교환받았다. 현대자동차의 조건은 게시글 삭제. 녹이 슬어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고발하겠다던 김씨는 새 차로 교환받은 뒤 더이상 에쿠스 관련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이전 글도 삭제했다.

다음으로 LG전자의 문제점를 지적한 블로거도 게시글 포스팅 이후 달콤한 제의를 받았다. 블로그 글을 삭제하면 1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는 램프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것.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지워주면 고객님 제품만 무상으로 교환해 드릴께요"라는 LG전자 측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그대로 올렸다.


◆ 언 발에 오줌누는 대기업…"왜?"

인터넷 시대다.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 게시판이나 블로그를 통해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의 감시와 견제가 대기업의 품질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잡기 보다 우선의 위기만 모면하려고 한다"며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네티즌의 입만 막으려고 할 뿐 개선을 위한 다른 노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언 발에 오줌누는 격이다.

대표적인 먹거리 회사 '농심'이 불량식품 제조업체로 낙인(?) 찍힌 것은 '소비자의 입만 막고 보자'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소홀했던 것이다.

한 소비자는 "농심제품에 이물질이 나와 신고하면 신라면 1박스를 주며 달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삭제 조건으로 보상금을 주기도 한다"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입막음에 급급하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