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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울타리/일반

[동아일보] ■영 캐주얼의 숨막히는 유행 변천사

[동아일보]
■영 캐주얼의 숨막히는 유행 변천사
# 장면 1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이마트' 가양점.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형 마트에서 직장인 황준석(31) 씨는 깜짝 놀랐다. "아직도 '인터크루'가 있다니…." 1990년대 초중반 탤런트 손지창을 모델로 내세운 패션브랜드 인터크루는 주황, 빨강 등 튀는 색 점퍼로 인기를 얻었다. 10여 년 전 학창 시절을 떠올리던 황 씨,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거 고가였던 이 브랜드는 현재 9800원짜리 티셔츠를 기획 상품으로 내놨다. 큼지막하던 'Intercrew' 로고 역시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할 만큼 옷 한쪽에 숨어 있다. 점원은 "10년 전 부도가 난 후 중저가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추억은 아름답고 현실은 눈물겨웠다.

# 장면 2
모니터 앞. 직장인 강정훈(30) 씨가 최근 인터넷쇼핑몰 사이트에 자주 접속하는 이유는 10년 전 즐겨 입었던 '스톰' 블랙진을 사기 위해서다. 송승헌, 소지섭이 모델로 나서 인기를 얻었던 '스톰'은 이미 2년 전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브랜드.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재고가 팔리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는 '스톰' 옷만 250개가 등록됐고 1주일 평균 1500건이나 팔린다. 1980년대에 인기 있던 '죠다쉬' 운동화도 1주일 평균 60건씩 꾸준히 판매된다.

'유니클로'의 스키니 진, '노스페이스'의 바람막이, 그리고 '컨버스' 운동화를 추종하는 지금의 10대에겐 한낱 촌스러운 역사다. 하지만 297, 386세대에겐 어깨를 으쓱하게 해줄 소중한 얘기일지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뜨고 지는 전쟁터 같은 국내 패션계. '헌트' '스톰'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 영 캐주얼 브랜드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근황을 추적했다.

●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①자존심 버리기=이마트로 들어간 인터크루는 중저가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전성기 시절 티셔츠 한 장 가격이 4∼5만 원이나 됐지만 지금은 9800원짜리가 나돌 정도로 싸졌다. 과거 10, 20대를 겨냥한 튀는 색 위주의 스포츠 스타일에서 지금은 30대를 위한 '무난한' 브랜드로 바뀌었다.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해야 하는 현실은 바로 '생존'이었다. 인터크루 영업팀 정경무 차장은 "'한 번 꺾이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국내 패션분위기 탓에 대형 마트, 지방 백화점을 중심으로 저가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23년째를 맞는 캐주얼 브랜드 '언더우드'도 지방에서 영업 중이다. '이랜드' 김용범 팀장은 "서울은 광고, 마케팅 비용, 임차료 등이 비싸고 유행 변화도 잦지만 지방은 유대관계가 끈끈해 고객층이 두터워 매출도 안정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②스타일 바꾸기="학생들의 등 뒤 패션이 똑같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1990년대 후반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이스트팩' 가방.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인기도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한순간 사라졌다. 이 가방은 썰물처럼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이스트팩이 새로운 부흥기를 위해 내놓은 전략은 바로 '마니아 공략'이었다. 과거 빨강, 파랑 등 원색 위주의 단순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2005년부터 국내에 그래피티 아티스트, 가수, 유명 디자이너 등과 함께 '예술 가방'을 내놓고 있다. 올해도 '질 샌더'의 수석 디자이너 라프 시몽과 함께 한정판 가방을 만들었다. 이스트팩 송은경 마케팅팀장은 "과거 학생들이 똑같은 가방을 매며 그 문화에 끼고 싶어 했다면 지금은 차별화를 통해 나만의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글=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